'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한국 정부 배상책임 첫 인정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한국 정부 배상책임 첫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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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 씨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국 상대 민사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일부 승소한 뒤 화상 연결을 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 한국이 원고 응우옌티탄에게 3천만100원을 배상할 것을 선고했다. 응우옌티탄씨는 8살 때인 1968년 2월 한국군 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의 총격으로 복부에 부상을 입고 가족들 역시 죽거나 다쳤다며 2020년 4월 한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류영주 기자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이에 따른 피해를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1심 판단이 7일 나왔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퐁니마을 학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로, 비슷한 피해자들이 줄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측된다. 판결이 확정되면 우리 정부는 위자료 3천만100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재판부는 한국군이 저질렀다는 학살에 대해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콕 짚어 명시하는 등 정부 측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백한 불법 행위"…1968년 그날의 진실

사건은 1968년 2월 1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해자 증언과 미군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이 이날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마을에 들어가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 70여명을 학살했다. 당시 8세였던 응우옌 티탄(63)씨는 복부에 총상을 입었고 가족들을 잃었다. 그는 2020년 4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위자료 3천만 100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 당시 마을 민병대원 등의 증언과 여러 증거를 바탕으로 응우옌씨의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J.M. 캄파넬리 당시 미 해병대 소령은 진상조사보고서에 "한국군이 퐁니마을에 사과하는 뜻에서 30 가마니의 쌀을 줬다"는 기록을 남겼다. 재판 과정에서 원고 응우옌 티탄씨와 그의 삼촌 응우옌 득쩌이씨도 증인으로 나서 참혹한 학살 상황을 증언한 바 있다. (참고 기사: [법정B컷]불탄 이웃, 잿더미된 가족…퐁니마을 학살 생존자의 증언)

재판부는 "당시 해병 제2여단 1중대 군인들이 원고 집에 이르러 실탄과 총으로 위협하며 원고 가족들로 하여금 밖으로 나오게 한 뒤 총격을 가했다"며 "이로 인해 원고의 가족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원고 등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원고의 모친은 외출 중이었는데, 군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곳으로 강제로 모이게 한 뒤 그곳에서 총으로 사살한 사실도 인정할 수 있다"며 "이같은 행위는 명백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재판부가 당시 한국군에 의해 학살이 저질러졌다는 증언과 증거를 모두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판판이 깨진 정부 측 논리

사실관계 인정 여부에 앞서 양측이 다퉜던 쟁점은 크게 세가지다. △베트남인인 응우옌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소멸시효가 만료됐는지 △위자료를 어떻게 책정할 것인지였다. 결과적으로 정부 측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베트남과 한국, 미국 간의 약정서 등에 따라 베트남인이 한국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군사 당국 및 기관 간의 약정서는 합의에 불과하다"며 "베트남 국민 개인인 원고의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청구권을 막는 법적 효력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조약은 행정부 수반들이 체결하고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는데, 당시 약정서는 이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조약으로서의 효력이 없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1968년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정부 측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무렵까지도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유가 있었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베트남전은 1964년부터 1975년 동안 장장 10년 동안 이어졌다. 응우옌씨의 고향인 퐁니마을은 남베트남 지역으로, 전쟁이 끝난 뒤 패망했다.

또 사건을 조작·은폐하려는 우리 정부의 시도가 있었던 정황을 감안하면 뒤늦게 소송을 제기했다는 정부 측 주장은 "권리 남용"이라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중앙정보부는 사건 발생 이듬해인 1969년 한국군 해병 제2여단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을 신문했는데, 우리 정부는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군인민법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는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와 가해자를 피해자가 안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위자료 규모 역시 원래 청구 금액보다 더 컸다. 재판부는 피해의 정도, 배상의 지연, 물가 및 통화가치의 변화 등을 고려해 정부가 응우옌 씨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를 4천만원으로 정했다. 다만 응우옌 씨의 청구 금액이 3천만100원이라 그 범위 한도에서 배상금이 인정됐다.

응우옌씨는 판결이 나온 뒤 화상 통화에서 "학살 사건으로 희생된 74명의 영혼들에게 오늘의 이 기쁜 소식이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파병 주무 부처인 국방부는 항소를 시사했다. 국방부는 판결 수용에 관한 언론의 질의에 "관련기관(국가보훈처) 협의를 통해 후속 조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해 불복 방침을 내비쳤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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