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發 원유난’ 베트남, 치솟는 연료비에 ‘전동화’ 가속화…”고유가가 바꿔놓은 도시 풍경”
가정에선 전기레인지, 기업은 EV 전환…’전기료 경쟁력·친환경 추세’ 전동화 뉴노멀 자리잡아
태양광 발전비 10년새 급감에 접근성 지속적 개선…중동 사태에 ‘재생에너지’ 핵심전력원 급부상
지난 2월 말 중동에서 발생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베트남인들의 삶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 놓고 있다. 치솟은 국제 유가로 연료비 부담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각 가정에 놓여 있던 가스레인지는 전기레인지로 바뀌었고, 도로에서는 전기차가 급속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유류비 부담으로 전기요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데다 안전과 친환경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전동화’가 베트남 도시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호치민시와 인근 지역 거주자들은 기존 가스레인지를 전기레인지로 교체하는 가장 큰 이유로 안전과 편의성을 꼽는다.
현지 매체 뚜오이쩨(Tuoi Tre)에 따르면, 호치민시 고법(Go Vap) 지역에 거주하는 낌 융(Kim Dung)씨는 몇 년 전 주방 리모델링을 하며 전기레인지로 바꿨다. 그녀는 “처음에는 화재 위험을 줄이려고 바꿨는데, 지금은 계속 오르는 가스 가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훨씬 편리하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럼동성(Lam Dong)에서 호치민시로 이사했다는 홍 응웬(Hong Nguyen) 씨의 사례도 비슷하다. 그녀가 입주한 임대 주택의 집주인은 안전상의 이유로 아예 세입자들에게 가스 조리 기구 사용을 금지하고 전기레인지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가전제품뿐 아니라 운송 수단의 전동화도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호치민시 빈쯩(Binh Trung) 지역에 거주 중인 20대 여성 프엉 안(Phuong Anh) 씨는 소음이 적고 친환경적인 전기버스를 애용한다. 현재는 출퇴근용으로 내연기관 오토바이를 타고 있지만, 첫 차만큼은 반드시 전기차를 구매할 계획이다. 그녀는 “충전 대기 시간은 상관없다. 단지 연료비로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전동화 흐름이 베트남의 국가적 전략 과제와 일치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RMIT베트남의 응웬 빈 크엉(Nguyen Vinh Khuong) 강사는 “중동의 긴장 고조로 유가 변동성이 심화되면서, 가정에서는 전기 기반 가전제품으로, 기업들은 지속가능성 목표를 위해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재생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전력 시스템의 장기적 안정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크엉 강사는 “에너지의 전동화 전환은 석유 수입 의존도를 줄이는 전략적인 선택으로, 현 시점에서 에너지 투자, 특히 에너지 효율 향상과 청정 에너지원과 연계된 전동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기업과 국가의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 전략이 될 수 있다”며 “전동화는 주로 도시 교통과 경공업, 주거용 에너지 사용 등 화석연료 소비량이 많고 전환 잠재력이 높은 분야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국 에너지 연구기관인 엠버퓨처스(Ember Futures)의 연구에 따르면, 베트남을 포함해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의 최종 에너지 수요 중 전력으로 충당되는 비율은 16%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태양광 발전 비용이 급감하면서 전동화에 대한 접근성도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 내 태양광 프로젝트의 금융 비용은 과거 12%에서 최근 10%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가스 발전을 통한 에너지 생산 비용(약 11%)보다 낮은 수준이다. 제로카본애널리틱스(Zero Carbon Analytics)의 분석에 따르면, 베트남이 태양광 발전을 통해 연간 약 25.9테라와트시(TWh)를 생산할 경우 화석연료 수입 비용을 매년 약 5억9,400만 달러 절감할 수 있다.
다안 월터(Daan Walter) 엠버퓨처스 수석 에너지 전문가는 “화석연료는 오랜 시간 경제 발전의 유일한 길로 여겨져 왔으나, 최근의 에너지 위기는 많은 국가, 특히 매년 수십억 달러를 연료 수입에 지출하는 신흥국들에게 해당 모델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력 수요 증가는 경제 성장과 밀접한 연관을 보인다.
베트남의 제8차 전력조정계획(PDP8)에 따르면, 2030년까지 상업용 전력 소비량은 연평균 10.3~12.5% 성장해 최대 5,578억 킬로와트시(kWh)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두 자릿수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필수 동력이다.
슈나이더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의 타이 황 꾸인(Thai Hoang Quynh) 베트남·캄보디아 에너지 사업본부장은 “디지털화와 인공지능(AI) 시대에 에너지 인프라는 단순한 기술 지원을 넘어 국가 경제의 핵심 플랫폼”이라며 “새로운 시대에서 인프라는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을 넘어 곧 경제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가 됐다”고 강조했다.
결국 전동화는 환경 보호라는 명분을 넘어,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기업과 국가의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