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벌' 모델 꺼내든 베트남…토종 대기업 키운다

'한국 재벌' 모델 꺼내든 베트남…토종 대기업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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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현지시간) 베트남 수도 하노이 거리. 신화=연합뉴스


“한국의 재벌 모델에서 일부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응우옌 바 훙 아시아개발은행(ADB) 베트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베트남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민간기업 육성책 ‘결의안 68호’를 이렇게 평가했다. 공산주의 국가 베트남이 새로운 성장 모델로 한국의 ‘재벌’을 꺼내 든 것이다.


국영기업과 외국 기업에 의존해 경제를 키워온 베트남이 삼성·현대처럼 여러 산업을 거느린 토종 대기업을 집중 육성해 다음 단계의 성장을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FT는 “전면적인 관료·경제 개혁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이 정책 전환에 나선 배경에는 기존 성장 방식의 한계가 있다. 베트남은 낮은 인건비와 외국 기업 유치로 글로벌 제조업 생산기지로 성장했고, 미·중 무역 갈등 이후 이어진 기업들의 ‘탈중국’ 움직임에서도 수혜를 입었다. 현재 미국이 전체 수출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하지만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무역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일부 국영기업이 부채와 부패 의혹에 휩싸이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해졌다.


핵심은 지난해 5월 채택한 ‘결의안 68호’다. 베트남 정부는 민간 부문을 “국가 경제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으로 규정하고 2030년까지 민간기업을 200만개로 늘리기로 했다. 글로벌 생산·공급망에 참여할 대기업도 최소 20곳 육성하고 민간 부문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를 55~58%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베트남이 참고하는 한국은 1960년대부터 가족 소유 대기업에 저리 자금과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는 대신 수출 목표를 부과했다. 삼성·현대 등 대기업은 전자·자동차·조선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산업화를 이끌었다.


‘베트남판 재벌’의 선두에는 동남아시아 시가총액 상위 5대 기업이자, 베트남 최고 부자인 팜?브엉 회장이 운영하는 빈그룹이 있다. 부동산에서 자동차·전기차·관광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 빈그룹은 최근 국영기업의 영역이던 대형 인프라 사업까지 진출했다. 56억 달러(약 7조9732억원) 규모의 하노이~하롱베이 고속철도가 대표 사례다. 120㎞를 연결해 현재 약 2시간30분인 이동시간을 30분으로 줄이는 사업이다. 이 밖에도 빈그룹은 최소 2개의 고속철도 사업과 하노이 도시철도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제2, 제3의 ‘베트남판 재벌’ 후보도 나온다. 자동차 제조업체 쯔엉하이그룹(타코)은 670억 달러(약 95조3946억원) 규모의 남북 고속철도 사업 입찰에 참여했다. 철강업체 호아팟그룹과 정보기술·통신기업 FPT도 후보로 꼽힌다.


다만 독과점과 중소기업 위축이라는 한국 재벌 시스템의 부작용까지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응우옌 바 훙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몇몇 대표 기업에 선도자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은 타당하다”면서도 이들이 국내 시장에서 독점기업이 되고 혜택이 중소기업으로 확산되지 못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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