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남편 ‘10대 사망 사고’ 불기소 의혹에···베트남 Z세대 ‘55번 나무’ 아래 모였다
한 시민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베트남 수도 하노이 중심부 응우옌후이뜨 거리에 있는 ‘55번 나무’ 아래 꽃을 두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건은 지난해 5월 하노이서 발생
최근 ‘음반 검열 논란’이 뜻밖의 진상규명 도화선
사고 차량 운전자, 문화부 장관 남편으로 드러나
Z·알파세대 “편히 쉬렴, 우리가 해결할게”
베트남에서 지난해 10대 청소년을 숨지게 한 장관의 남편이 기소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청년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온라인 비판 게시물 검열 의혹까지 불거져 저항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베트남 수도 하노이 중심부 응우옌후이뜨 거리에 있는 ‘55번 나무’ 주변으로 시민들이 형형색색의 꽃을 두고 가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사복 경찰관 등은 나무 인근에 서서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5월25일 발생한 18세 여학생 도 응옥 프엉 투이의 사망 사건과 관련돼 있다. 당시 대학입학시험을 며칠 앞둔 그는 아버지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55’ 표지가 붙은 가로수 인근을 지나다 BMW 차량에 치여 숨졌다. 이후 사고 BMW 차량 운전자가 럼 티 프엉 타인 베트남 문화스포츠관광부 장관의 남편이자 국회 외교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응우옌 시 끄엉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동안 잊혔던 이 사건은 최근 뜻밖의 계기로 재조명됐다. 지난달 베트남 인기 래퍼 MCK가 자신의 노래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문화부의 검열을 받았다고 밝히면서다. 누리꾼들은 럼 장관을 비판하며 남편이 연루된 교통사고에 대해 공개된 정보가 지나치게 적다는 점도 지적했다.
지난 12일 베트남 독립 매체 루앗콰에 따르면 당시 사고와 관련한 SNS 게시물은 최근 100만건을 넘길 정도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후 베트남 당국이 페이스북 측에 관련 게시물 차단을 요청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온라인 검열·정보통제에 대한 반발로도 확대됐다.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가 공개되면서 여론은 더 악화했다. 영상에는 응우옌 전 부위원장이 운전석에서 내려 피해 여학생과 아버지에게 걸어가는 모습, 조수석에서 럼 장관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사고 현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소지품을 챙기는 모습이 담겼다.
시민들은 사고 현장인 ‘55번 나무’ 아래에 꽃을 놓으며 희생자를 추모하기 시작했다. 학생과의 약속을 상징하는 흰색 리본을 가방에 묶는 이들도 나타났다. 경찰이 꽃 더미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이 포착되자 청년들은 가상의 나무에 추모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가상의 55번 나무에는 “부디 그곳에서 편히 쉬어. 우리 10대들은 너를 위해, 정의를 위해 싸울 거야”, “이 나라는 정말 망했어”, “언니의 이루지 못한 꿈을 우리가 이어갈게.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가 진실을 찾도록 도울게”, “우리의 믿음과 행동으로 정의가 실현되기를” 등의 메시지가 기록됐다.
결국 당국은 지난 17일 응우옌 전 부위원장이 사고 차량의 운전자가 맞다고 시인했다. 사건 발생 약 15개월 만이다. 국영TV 보도에 따르면 그는 당시 도로의 반대 차선으로 역주행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 당국은 그가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했고, 유족들이 고소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기소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시위에 대해서는 “반동적인 세력이 젊은이들과 학생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정부가 대중의 의혹에 직접 대응한 일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반발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국영TV 보도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피해자의 아버지가 등장했는데, 그가 실제 아버지가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온라인에서는 음성으로 발표된 응우옌 전 부위원장의 음주 측정 결과가 인공지능(AI)으로 조작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해당 보도의 원본 영상은 보도 이후 유튜브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양극화된 사회에서 축적된 부패한 기득권에 대한 청년의 분노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한 네티즌의 댓글을 인용해 응우옌 전 부위원장이 형사 기소를 피한 것은 국가의 법률 시스템이 부자들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뿐이었다고 전했다.
베트남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 여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최근 각 언론사에 인도를 휩쓴 청년 주도 반정부 운동인 ‘바퀴벌레국민당’(CJP) 관련 보도를 자제하라는 서면 통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정부가 경제 성장에 집중하는 시기에 예상치 못한 청년 주도 운동이 일어나 책임 규명을 요구하는 상황에 압박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에서는 지난 5월 미취업 청년을 바퀴벌레에 비유한 수리야 칸트 대법원장에 반발한 청년들이 가상 정당인 CJP를 창당했다. 이후 의대 입학시험 문제 유출 사건에 항의해 한 달 넘게 시위를 벌였고 결국 나렌드라 모디 내각에서 처음으로 다르멘드라 프라단 교육부 장관이 낙마했다. 지난해에는 네팔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Z세대 중심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